애들 자습시키고 빨리 와
- EDUCATION
- 2011. 11. 8. 21:31
교사는 수업도 해야 하고, 교육 행정 업무도 해야 하고, 학급 경영 활동도 진행해야 하고, 그 외 교육 현장에서 발생되는 각종 잡무들을 책임지고 있다. 이 글에서 교사의 급여와 업무 강도에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만하면 편한 직업이라는 비아냥이나 선배 교사들은 일이 더 많았다는 등의 논점을 흐리는 반응들은 일단 보류하겠다.
나는 교사와 학생들이 수업권을 침해받는 사례의 대표적 예와
그 부당함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수업권이 침해받는 가장 큰 이유는 '수업 중 전화'다.
행정 업무를 빨리 처리해야 하니, 일단 수업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대표 레퍼토리는 다음과 같다.
애들 자습시키고 빨리 와
교사는 어리둥절한 채, 수업 시간에 억지로 교실 밖으로 불려 나가는데
대부분의 이유란,
교육청에 빨리 보고해야 할 사항이 있으니 당장 처리할 것
국회의원이 당장 요구하는 통계자료가 있으니 당장 처리할 것
학교 행사를 하는데 짐 나르기, 청소하기, 장비 설치 등을 할 것
때때로 학생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러한 일들이 꼭 수업시간에 진행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조급증만 버린다면
아침 자습 시간이나, 점심시간, 방과 후 등 수업 외 시간에 위와 같은 일들이 진행되더라도 교육과정을 운영하기에 충분하다.
다음은 수업권을 침해받는 두 가지 유형들이다.
1. 수업시간에 교사를 교실 밖으로 불러내어서,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것
학교 행사 및 교육 행정 업무 등을 이유로 하여 수업 시간에도 전화는 수시로 걸려온다.
나는 업무 담당자이기 이전에, 한 학급의 담임이다. 학생들이 수업을 받을 권리와 교사가 학생들과 수업을 함께할 권리는,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 수업을 잘하는 교사가 최고라는 말을 하는 주체들이, 정작 수업을 방해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학생들에게 자율학습을 시키고 내려오라는 말도 굉장한 어폐가 있다. 교사는 학생들의 자율적인 학습 시간에도 옆에서 그들을 관찰하며 학습을 원활하게 도와줄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율학습을 시키고 내려오라는 것은 그야말로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방치'하고 내려와서 다른 일 먼저 처리하라는 말이다.
2. 교육 행정 업무를 교사에게 부과하고, 필요에 따라 수업 시간에 불러내는 것
앞서 언급한 '수업시간에 아무렇지 않게 교사를 불러내는 일' 연관 깊은 사안이다. 직접 겪은 일로는, 학부모 대상 세미나를 하러 교육청 직원들이 왔으니 빨리 내려와서 음향 상태를 확인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문제는 그때가 수업시간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1교시 중간 즈음에도 똑같은 전화를 받았다가 2교시 중간 즈음 또 그랬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업무에 태만한 교사가 아니다. 전화를 받은 그런 사항들은 출근하자마자 익히 확인해 두었고, 바로 전 쉬는 시간에 모두 점검한 사항들이었다. 하지만, 교육청 직원들이 우왕좌왕 기계를 건드리는 바람에 음향 상태가 엉망이 되었다. 내가 오만상을 찌푸리고 기계들을 조작하는 동안 학교에 근무하시는 교육 행정직 4분이 그 자리에 '그냥' 계셨다. 그분들은 교육 행사를 준비하는 그런 종류의 일들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셨다. 그런 허드렛일은 젊은 교사들을 수업시간에 불러내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열악한 교육 재정을 감안해서, 수업 이외의 교육 행정 업무들이 일정 부분 교사에게까지 부과되는 현실을 백 보 이해한다고 치자. 하지만, 수업권을 침해받으면서 까지 교사가 기술자 역할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모든 학교의 상황에 일반화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 이러한 일들이 발생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수업권을 보장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