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맹자와, 프랑스의 프레네

'맹자'를 다시 읽다 보니,  프레네 교육철학과 맥이 닿는 부분이 있어 이를 정리해본다.

맹자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덕으로 선정을 펼치는 왕도정치 사상을 논했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전국시대에 살았던 맹자는, 정치에 뜻을 펴지 못하고 고향에 내려와 제자들을 기르는데 힘쓴다. 그리고 그의 사상은 꽤 오랜 시일이 지나서야 제대로 조명을 받게 된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벼운 것이다.'
- 맹자 진심편 하14

맹자는 부국강병보다 백성 자체의 존귀함을 강조한 씩씩한 낭만주의자였다.

Mencius

맹자의 말을 교실 상황으로 바꾸어 보면, '학생이 가장 귀하고, 교육과정이 그 다음이며, 교사(교장)는 가벼운 것이다' 정도로 말할 수 있을까.

앞선 시대의 공자는 교육의 힘을 깊이 신뢰하여, 인격 도야로 개인의 행복을 실현하고 이를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고자 했다. 맹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군주보다 백성을 더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 사회 정치 문화가 한 궤적에 있음을 통찰하고, 백성 중심의 인본주의적 철학을 국가 정치에 반영하고자 했던 것이다. 맹자는 백성 중심의 국가론을 통해, 삭막했던 전국시대 군주들과 격렬히 투쟁했던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그리고 제자들과의 언행이 촘촘히 기록된 '맹자'를 통해, 후대 사람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남기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재평가를 받고 있다.

맹자는 인간을 본래부터 선한 존재로 믿었다. 그는 교육을 통해 본래의 선한 심성을 싹 틔워 기르는 것이 국가와 지식인의 책무라 말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부국강병인가?'라는 최소한의 성찰이 부족했던 춘추전국시대에, 백성의 귀함을 설파했던 맹자. 천하를 주유하며 제후들과 논박을 펼치고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꿋꿋하게 제자들을 길러냈던 맹자에게서, 프레네 선생님이 모습이 겹쳐짐을 느꼈다. 비록 모두의 시공간은 다르지만, 프레네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선생님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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